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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1. 7회 혈관처럼 뻗치는 식물의 잎맥… 불완전한 인간의 뿌리를 투영하다
  • 게시일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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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김선혁 ‘잊혀진 기억’(A forgotten memory), 스테인리스스틸에 채색, 273×160×95㎝, 2017. 크라운해태 제공



■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 (7) ‘존재’를 조각하는 김선혁

머리서 풀 펼쳐지는 ‘행복 Ⅱ’
인간-식물 유사 구성체계 집중

시멘트 바탕 회화 ‘A portrait’
세계 권력자들의 허상 드러내

돌무더기 등 배치한‘욕망과…’
실존을 가능케 하는 힘 보여줘

photo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미술비평가)

김선혁의 작업에는 익숙한 낯섦이 있다. 인간의 얼굴이나 몸에 식물의 잎과 줄기가 배치된 조각이나 평면은 예기치 못한 긴장과 이질적인 시선을 느끼게 한다. 마주 보는 얼굴이나 엎드리거나, 서 있는 인체 형상은 혈관처럼 식물의 줄기와 잎맥으로 뒤덮이고 뿌리와 연결돼 있다. 가는 선으로 인체의 혈관이나 식물의 잎맥을 도드라지게 하는 그의 조각적 표현은 불완전한 존재를 보다 강렬히 경험하게 한다. 그는 왜, 언제부터 인간과 식물의 형상적, 존재론적 결합에 이끌렸던 걸까.

작가의 작업에 가장 큰 모티프인 인체와 식물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먼저 추적해 보자. 숲이 많았던 곳으로 기억하는 동네에서 매일 곤충을 잡으러 다녔던 그의 유년기는 평화롭고 신났다. 나무와 식물은 그에게 가장 친근한 시각적 환경이자 무의식적 교감의 대상이었고 그의 예술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긁적거리고 만들기를 즐겼던 소년은 책상과 스케치북에 반복적으로 식물의 잎맥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그려내곤 했다.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게 된 예술고등학교 2학년 때 조소를 전공으로 선택했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환경조각을 전공하면서 조각적 표현력을 진지하게 탐구하게 됐다. 표현 대상인 나무의 조형은 대학 때부터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가 언급한 대로 그의 조형은 “인체의 혈관, 신경계의 구조와 식물의 분배 체계 구조의 형태적 유사성에 주목해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식물에 은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photo김선혁 ‘벗겨진 초상 6’(Naked Portrait 6), 스테인리스스틸에 채색, 53×23×53㎝, 2014. 크라운해태 제공



작가는 “현재의 생각, 깨달음과 같은 영감을 시각적 결과물로 담아내고 이를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것”이라 얘기한다. 그의 작업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목표를 향한다기보다, 삶의 시간 속 자신의 성찰을 구체화한 것이다. 인간과 식물 형상은 삶에 대한 자신의 표정이고 무의식적 반응인 셈이다.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연 첫 개인전 ‘삶에 의해 그려진’(Drawn by Life)전을 보면 이런 작가로서의 삶이 학습기의 시간과는 다르게 사회적 여건에 따라 무겁게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행복해지는 법Ⅱ’(The Way to HappinessⅡ, 2010)는 그를 세상에 알린 첫 작품으로, 트레이드 마크인 인간과 식물의 겹침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스테인리스스틸과 우레탄으로 형태를 만들고 아크릴로 채색된 270㎝ 높이의 혈관처럼, 잎맥처럼 보이는 거대한 얼굴에서 처음으로 인간과 식물이 하나로 연결된 존재로 제시됐다. 기도하듯 몸을 구부린 형상의 ‘행복해지는 법Ⅳ’(The Way to HappinessⅣ, 2010)는 엎드린 등으로부터 보라색 꽃이 피어오르는 형태로, 또 다른 연작 ‘행복해지는 법’(The Way to Happiness, 2010)은 어린 인물의 머리에서 푸른 잎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작가가 삶의 시간에 주목하고 이를 관통하는 각성과 의미 부여를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까닭에 인물의 형태와 자세가 중요하게 부각됐다. 2012년 노암갤러리에서 연 ‘소박한 진리’(Simple Truth) 전시에선 현실에서 마주한 사건과 빛에 대한 의미를 다뤘다. 삶의 많은 순간 가운데 현실에서 각성의 찰나는 그 자체로 빛이자 진리, 영감이다. 일차적으로 종교적 또는 보편적 빛으로서의 의미와 평안은 그의 작업에서 기록적 사실과 구체적인 오브제 설치로 드러난다. ‘Myopia’(2012)는 일상에서 만나는 ‘가로수’ ‘벼룩시장’ 등 정보지가 빛 상자 형태로 십자가 혹은 병원의 링거를 연상시키며 삶의 시간을 기록한다. 이 작업이 현실에 대한 내적 독백이라면, 스테인리스스틸로 식물과 겹쳐진 인체의 형상이 공중에 매달린 채로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 힘이 없는 듯한 상태로 놓여 있는 작품 ‘몸부림’(Wriggle, 2011)은 현실적 증언의 작업을 통해 평안과 질서의 빛에 대한 직접적 갈구를 엿보게 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photo김선혁 ‘예측하지 못한 날’(An unpredictable day), 스테인리스스틸에 채색, 210×100×75㎝, 2016. 크라운해태 제공



이런 시간을 관통한 후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벗겨진 초상’(Naked Portrait)전은 어려웠던 전업작가의 길에 한 줄기 빛이 됐다. 이 전시는 작업의 내용적 측면에서도, 전시가 열리는 지역적 측면에서도 전환적인 기회가 됐다. 이전에 그가 다뤘던 작업이 자신의 현실적 각성과 관계된 것인데 반해, 파리에서의 전시는 권력자의 초상이자 회화적 형식을 갖춘 작품이 전면에 등장한 점에서 특별하다. 인터넷을 통해 그의 작품을 흥미롭게 본 프랑스의 한 갤러리로부터 초대를 받아 전시가 이뤄졌는데, 흥미롭게도 이 전시는 작가를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총괄 아트디렉터와 만나게 했고 메종 에르메스 상하이(上海) 지점의 쇼윈도 프로젝트를 의뢰받는 기회로 이어졌다. 당시 현실에서의 고민과 각성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드러낸 그의 작업이 진지하고 무겁다는 국내 반응과는 달리 해외에서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되며 작가는 작업 초기 느꼈던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다소 극복할 수 있었다. 소신 있는 행보를 이어가게 된 작가의 ‘권력의 초상’(A portrait of authority, 2014)은 시멘트를 바탕으로 한 회화다. 사실적인 표현으로 세계 각국 권력자들의 초상을 담은 네 점의 작업은 시멘트에 아크릴 채색으로 이뤄져 탁하고 무거운 느낌으로 구체화된다. 그림 속 재킷을 뚫고 얼굴과 손 부분에 피어오르는 나뭇가지들이 생명체 본연의 존재를 대신하는 한편, 언젠간 사라질 권력의 허상을 드러낸다. 특정 권력의 인물들이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특성으로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읽을 수 있다. 그가 주로 다루는 선조(線彫)로 이뤄진 작품들 역시 ‘벗겨진 초상’ 시리즈로 명명돼 의미의 결을 같이한다. 표현적으로는 좀 더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의 속성이 강조되는데, 특히 ‘벗겨진 초상Ⅳ’(2014)에서 나무의 뿌리 전체가 인간의 엎드린 형상과 하나가 된 모습은 불완전하고 불안한 인간을 명료히 드러낸다.

해외에서의 전시와 프로젝트의 경험 이후 2017년 단원미술제 공모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는 국내 미술계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수상작 ‘순례자-2016’(Pilgrim-2016)은 2014년 ‘벗겨진 초상Ⅳ’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데,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육상 선수처럼 한쪽 무릎을 바닥에, 다른 한쪽 무릎을 세우고 뛸 준비를 하는 인물 형상을 특유의 금속 선조로 완성했다. 제목에서 말하는 순례는 종교적 의미와 결부되는데, 그의 예술이 절대자에 다가가는 구도적 행위인 순례로서 행위인지도 모른다. 또한 육상 선수처럼 뛸 준비를 한 인물의 등 위 촛불은 현실의 난항에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자기 고백의 서사로도 읽힌다. 구도자의 순례처럼, 자신의 예술 행위가 그 길임을 촛불로 밝힌 것이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대해 “철이라는 재료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고, 불완전한 삶을 고민하는 현대인의 갈등을 현대적인 미감을 잘 살려 조화롭게 선보인 조형적 완성도를 높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 상은 어렵지만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확신을 받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2018년의 유중아트센터에서 연 ‘파편’(Fragment) 전시로 다시 한 번 조명을 받는다.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불안, 불완전성에 대한 자성이 작업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깊어가는 시기로 이행되면서다. 예술가로서 실존에 대한 고민보다 자신의 조각 언어와 철학으로 유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 ‘지혜의 정의’(The definition of wisdom, 2018)는 이전의 ‘벗겨진 초상’ 시리즈나 ‘순례자’ 시리즈와는 다른 시선을 느끼게 한다. ‘욕망과 한계의 형식’(A form of desire and limit, 2018)은 자신이 조각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진리에 대해 엄격한 해체를 거듭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형광등 아래 벌러덩 뒤집힌 양의 설치나 돌무더기와 전광판, 바닥에 설치된 연결된 인체와 식물, 식물이 보이는 콘크리트 바닥의 틈, 환풍기 상부 모두 대체로 불완전하고 불가능한 상황들이다. 즉 작가는 실존을 가능케 하는 근원적인 힘을 정의해 가는 과정을 이 불완전한 상황 설치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2019년 수하담 아트스페이스 전시로도 이어진다. 여기서 식물들의 존재와 땅속의 틈이 주목되는데, 기존에 시도하지 않은 추상적 형태와 식물의 초상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단단한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나오는 식물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초상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불가능한 조건을 뚫고 나오는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느껴보고자 했고, 지구의 생동하는 물질로서 피조물의 운명을 상상하고 기념하는 ‘초상’(Portrait) 시리즈를 제안했다. 생명도 사물도 상호작용적 행위와 관계, 우주적 질서 내에 존재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사물들의 메시지는 2021년 ‘적절한 반응’(Appropriate reaction) 전시에서 강조됐다. 최근 그의 작업은 식물의 시선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조명한다. 욕망과 마주하는 인간의 행위와 다른 식물의 ‘수용’의 태도를 탐색하는 것이다.

김선혁은 조각의 물성과 제작 방식을 끊임없이 탐색하면서 선조의 형식으로 인체와 식물의 감각, 사유를 전해왔다. 그는 인간과 식물의 관계적 지평 속에 예술적 사물과 언어를 여전히 실험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스미는 동시적 자각과 반응을 예민하게 발신하고 있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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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혁 조각가는

인간과 식물이 결합한 형상을 만드는 독특한 조각을 선보이며 인간의 삶과 실존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탐색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속을 가늘게 만들어내는 선조(線彫)로 인간의 식물화, 식물의 인간화를 보여주는 그의 조형기법은 사물이나 생명체의 고정적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안, 불편한 공포의 정서로 유인하며 특유의 존재론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1981년생인 작가는 서울시립대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부터 8번의 개인전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단원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해외 유명 블로그에 작품이 소개돼 프랑스 파리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하며 해외 컬렉터들이 작품을 소장하는 등 신진 조각가로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photo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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