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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사슴의 뿔을 훔친 인간… 고꾸라진 생명을 꽂은 폭력의 당당함 (금중기 작가)
  • 게시일 : 20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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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사람과 동물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하는 ‘감각의 노출’. 57×116×185㎝,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위에 우레탄 도색, 2011.



■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4) 금중기의 느슨한 충돌: 위기를 맞은 지구 공동체

구체 관절인형 옆 검은 해골
삶과 죽음 한데 모은 기괴함

좌대에 위태롭게 선 새끼사자
거울 같은 표면 ‘위험의 반사’

개구리·돼지·토끼 등 작품에
우레탄 도색… 상품처럼 표현

기후변화 등 전세계 닥친 위기
감각적 작품… 위트 있게 경고


금중기 작가의 작품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작가가 표현하는 동물들은 본연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왜곡이나 과장은 아니지만 사실적이지도 않다. 작가의 작품은 선명하고 광택 있는 화려한 색채로 표현돼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매끈한 형태는 시각적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이미지 안에는 생태계의 위기를 고발함과 동시에 인간과 공존하는 생명체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그가 동물을 작품의 소재로 제작하기 시작한 지는 20년을 훌쩍 넘겼다. 동물연작은 일찌감치 동시대의 사회적, 환경적 문제의식을 보여주며 금중기만의 세계관을 담아왔다. 작가의 세계관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일상의 사물이나 사소한 대상의 존재가치에 대한 탐색이 점차 인간중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촌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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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작품엔 양초와 비누, 먼지, 방독면, 재활용품 등을 사용한 입체 설치작품이 등장한다. 1999년 열린 개인전 ‘이끌어냄 & 드러남’에서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탐구하고,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했다. 가령 작가는 작업실에서 채집한 먼지를 현미경으로 일백만 배로 확대해 마치 세포를 들여다보듯 관찰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설치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티끌 세계의 탐색, 바닥 표면에 퇴적되기까지의 축적된 시간, 그 시간 속에 담긴 미지의 세계를 확대해 보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현미경 속에 보이는 먼지 형상을 확대해 3m가 넘는 크기의 입체작품으로 제작한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티끌을 기괴하고 낯선 거대한 형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가 가진 에너지와 잠재적 현상을 ‘이끌어내고 드러나게’ 했다. 닦아내야 하는 더럽고 불분명한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사물의 본질을 추적하고자 한 것이다.

이후 작가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존재의 가치, 사라지는 생명체, 환경오염으로부터 파괴되는 생태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언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2000년에는 거대한 썩은 나무 위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그물에 매다는 설치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성찰, 더불어 환경보호를 위해 행동할 때임을 경고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이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게 된 계기는 2002년부터 프랑스 파리에 1년간 체류하게 되면서다.
 

photo자연의 경고를 표현한 연작 ‘감각의 노출’. 150×90×92㎝, 2011.



파리 시내 곳곳의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을 찾은 작가에게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자연사박물관이었다. 특히 자연사박물관 1층에 진열된 포유류의 종류와 스케일은 압도적이었다. 동물 종에 따른 체계적인 분류와 연구물은 놀라웠다. 자연사박물관은 작가가 여러 차례 방문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무를 만큼 가장 큰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특히 다양한 동물의 생김새와 각양각색의 문양에 매료되어 동물에 대한 호기심은 깊어졌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인지한 시간이었고, 이를 소재로 한 작업을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은 시기였다.

그러나 작가가 머문 파리의 작업실은 입체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재료를 쉽게 구할 수도 없었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마침 가져간 니콘 FM2 카메라는 그에게 낯선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가기 위한 최적의 도구가 되었다. 때마침 유럽 곳곳에서는 굵직한 사진 전시가 한창 열리기도 했다. 사진 작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작가는 에콜 데 보자르 베르사유에서 사진전공 과정을 단기로 듣게 된다. 5회 이상의 개인전과 수십 차례 기획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작가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초심을 다잡고 기본기를 생각하는 시간이자 입체와 평면,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시기였다. 작은 암실을 만들고 사진을 직접 인화하기 시작했다.

사진 작품에는 장난감, 지구본, 인형과 같은 다양한 오브제가 등장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의 드로잉과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피사체 자체를 기록하기보다 대상 간의 공간감과 긴장감을 표현하려 했다. 대상을 결정할 때 사물 간의 관계성, 크기와 간격, 조명의 밝기와 배경색이 결정되면 사물과 사물을 결합, 또는 병치해 연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느슨한 충돌’ 연작이다. 상호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두 단어의 결합은 작가가 사물을 배치시키는 방식과 유사하다. ‘느슨한’이 ‘충돌’의 파괴적 의미를 흡수시켜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두 단어가 공생하는 비현실적 공간을 만든다. 사진작품 ‘느슨한 충돌’(2005)은 수술 자국이 선명한 두개골을 가진 구체관절인형 옆에 검은 해골을 배치하고 붉은 배경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삶과 죽음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은 기괴하면서 유머러스한 상황은 컬트 무비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다수의 사진작품으로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사진 속 상황을 보는 이의 해석으로 남겨둔다.
 

photo‘느슨한 충돌’은 삶과 죽음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60×75㎝, 2005.



‘감각의 노출’(2011) 연작은 사람과 동물 간의 충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연작 중에 사슴의 거대한 뿔이 인간의 머리 깊숙이 박혀 있는 조각 작품이 있다. 사슴이 들이받은 형태이지만 필자에겐 사슴의 뿔을 훔친 인간의 모습으로 보인다. 동물의 머리에 난 뿔은 방어와 공격의 중요한 도구다. 생존에 필요한 번식과 구애를 위한 수단이며, 권력과 힘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사슴뿔을 머리에 꽂고 당당히 서 있는 인간, 작가는 그 폭력성에 속수무책 고꾸라져 매달려 있는 사슴을 통해 인간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한 한 생명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감각의 노출’은 마치 투명망토를 두른 듯 주변이 그대로 반사된다. 새끼 사자는 찢기고 갈라진 좌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거울 같은 표면은 보는 이의 모습을 왜곡하고 반사해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한편 반사의 의미는 인간에게 위험을 그대로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자연의 경고이기도 하다. 그밖에 벽을 타는 개구리 ‘숲’(2008)의 알록달록한 색상은 아름답고 비현실적이다. 중남미의 밀림에 서식하는 독화살개구리의 색에서 가져왔다. 독화살개구리는 원주민이 화살촉에 묻혀 사용할 만큼 피부의 독성이 강력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위험한 독성에도 불구하고 작은 크기와 화려한 색으로 애완동물 시장에서 인기가 높아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 있다.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주물로 제작된다. 먼저 동물의 해부학적 특징을 살려 흙으로 골격을 만들고 살을 붙여 최대한 단순화시킨 후 표면을 매끈하게 처리한다. 이후 청동 주물, 알루미늄 주물과 같은 금속으로 제작한다. 그 위에 사용하는 도색 방식은 우레탄 도장이다. 우레탄 도장은 주로 자동차나 제품에 사용된다. 작가가 인간의 도구로 이용되는 동물을 비유해 마치 상품처럼 표현하기 위해 찾아낸 도색방식이다. 그 결과 다양한 색상으로 완성된 작품은 인공적이며 한편으론 경쾌한 시각적 매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기법은 관람자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접근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작가는 이 방식으로 고릴라, 사슴, 사자, 돼지, 토끼, 기린, 거북이, 개구리, 도마뱀과 같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을 입체로 제작하고 다양한 몸짓과 표정을 통해 인간과의 불안한 공존을 보여주고자 했다.
 

photo벽 타는 개구리를 형상화한 ‘숲’. 150×110×34㎝, 2008. 공동기획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염, 호우, 가뭄, 태풍과 같은 재해는 더 강력해지고 있으며, 우리의 삶에 큰 위기가 다가온다고 경고한다. 금중기는 우리에게 닥친 위기상황을 그만의 특유한 감각적이고 위트 있는 작품으로 보여준다. 지난 30년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환경,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 맺음에 대한 사유와 성찰을 올곧게 이어온 작가는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인간은 자연과 공생해야 하는 지구공동체임을 깨닫게 하며, 지속 가능한 환경, 나아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예술의 역할을 실천하고 있다. 강재현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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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중기 작가는

1964년 경북 상주 출생으로, 홍익대 조소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5년 중앙비엔날레 우수상을 수상하고 다음 해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성곡미술관 기획전 ‘생명의 그물전’(2000)을 시작으로 환경문제를 다룬 다양한 기획전에 참여했다. 파리 시테국제예술공동체(2002)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2003), 가나아틀리에(2004) 등 국내외 레지던시에 참가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느슨한 충돌’(2005), ‘위협문화’(2008), ‘낙관적 형식’(2011) 등이 있으며, 기획전으로는 제5회 광주비엔날레 주제전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2004), ‘빛과 환경전’(2006, 중국), ‘백남준아트센터 개관전’(2008), ‘한국현대조각 2010’, ‘나비의 꿈’(2011), ‘한글, 공감각을 깨우다’(2021) 등이 있다.

국내외 아트페어에 출품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안동대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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