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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조각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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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근대 구상조각에서 도심 조형물까지… 한국의 미학 담아 해외서도 새바람
  • 게시일 :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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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구상미술의 도약
이환권 작가의 2020년 작품. fnDB이환권 작가의 2020년 작품. fnDB
"모방이란 회화, 조각, 시예술(時藝術)에서 각기 똑같이 만족의 한 요인이다."-아리스토텔레스.

K-스컬프처 작가에게 어떤 사유로 조각의 길을 걷고 있는지 물으면 어린 시절 비누나 점토로 기가 막히게 사물을 모사해 내는 능력을 발휘했다는 경험을 공통으로 이야기한다. 자연이나 사물을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며 이 중 시각적 표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시각예술 분야로 입문하게 된다. 이처럼 가시세계를 조각으로 미메시스(모방)한 양식이 구상조각이며 추상조각에 대립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필자는 한참 전 어린 생각에 석굴암 본존불상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더 대단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었었다. 석조과정에서 화강암에 쇠정이 깨져나가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이탈리아 대리석은 연두부, 우리 화강암은 콩 입자가 살아있는 딱딱한 메주라는 것을 인식하고 표피적인 기교를 동일 비교 선상에 놓은 무지함으로부터 미립이 트였다. 비단 재질의 상이함만이 아니다. 서양의 해부학적 인체접근과는 다르게 숭고의 필터를 통해 정각(正覺)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현현한 이상적 사실주의라는 것을 수학하며 깨달았다.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에 최초로 조각전공이 개설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소학부에서 배우는 인체조소 방법은 1920년에 동경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돌아온 김복진(1901~1940)이 근대 구상조각의 포문을 열며 전파한 서구식 모델링 기법이다. 커리큘럼을 마스터한 한국의 구상조각가들은 동양철학에 서구식 조형원리를 반영시킬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한 것이다. 근대 조각의 1세대인 김경승, 윤승옥, 윤효중 등에서 2세대인 백문기, 김정숙, 전뢰진, 윤영자, 민복진, 김영중, 송영수, 배형진, 오종욱, 최기원, 최만린 등으로 구상조각이 면면히 이어지던 중 현대조각이라는 견장을 얹은 추상조각이 미술계를 쓰나미처럼 휩쓸었다. 2세대 중 상당수는 인체 구상에서 출발하였지만, 비정형 앵포르멜(informel)을 통해 추상조각으로 점차 방향을 전환하였다.

지난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권진규(1922~1973)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가 개최되었다. 권진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살아생전 구상조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33㎡ 남짓의 작업실에서 혼을 불사르며 작업을 했을 시절 도둑이 들어 그의 흉상 한 점을 훔쳐 간 사건이 있었다. 그는 작품이 귀중품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흐뭇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후 그의 도난당한 조각이 시궁창에서 발견됐고 도둑이 버렸다는 사실에 그는 크게 낙담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높은 가치를 가진 작품의 작가가 생전 겪은 에피소드는 웃음보다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모든 예술 분야가 어려운 환경 속에 있지만 조소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상대적으로 더 고단하다. 타 분야보다 더 넓은 작업공간, 다양한 물성, 공구상 수준의 도구, 육체적 노동을 수반해야 하는 특성에 유해한 화학물질과 분진은 덤으로 주어진다.

열악한 환경에도 고군분투하며 다방면으로 가능성을 고찰하고 시도해온 한국의 구상조각은 정부의 지원, 기업 메세나의 후원에 힘입어 공공미술로서 도심 곳곳에서 조우할 수 있다. 이런 부흥책으로 해외 선진국에서도 도시미관을 연구할 때 한국을 성공예시로 들고는 한다. 또 차세대 구상조각가들은 계보가 아니더라도 태도로 구상의 형식을 규정하고 한국 고유의 주체적 미학을 투영해 해외 미술시장에서 단색화의 병풍을 헤치고 나아가 예상 낙찰가보다 높은 가치로 인정받는 등 K-스컬프쳐의 영광을 재촉하고 있다. 소통과 공감을 배태한 한국의 구상조각은 앞으로 더욱 뜨겁게 한류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하리라 믿는다.

김하림 조각가·㈜아트플렛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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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nnews.com/news/202207281810192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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