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백남준의 등장, ‘조각+영상’ 새 미술형식 출발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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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컬프처와 한국미술 (6) 한국의 비디오조각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에서 시작 조각·설치와 결합한 비디오작품은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 출현 LED기술 접목한 작품 등으로 변주
이이남, 피에타 랜드마크 조감도, LED를 활용해 일상에서 비디오 효과를 연출한 야간전경
정정주, room with yellow door, 2022, 3d animation, framed 32 monitor
"앞으로 우리 모두는 아마추어 텔레비전 방송을 하게 될 것이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1967년에 한 말이다. 아마도 지금의 유튜브 시대를 예견한 듯하다. 2005년 구글이 내놓은 '사용자가 동영상을 자유롭게 올리거나 시청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디오 플랫폼'이다. 'YouTube'는 사용자를 가리키는 'You(당신)'와 미국 영어에서 텔레비전의 별칭인 'Tube'를 더한 것이니, 말 그대로 '아마추어 텔레비전 방송의 전성시대'를 열어준 셈이다. 지금은 명실공이 'N스크린' 다채널 시대를 선도하는 디지털TV 강국의 선두에 섰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의 영상신호를 다루는 장치나 회로인 비디오(video)가 한국미술의 조각 장르와 연계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한국 비디오아트는 1970년대 전위적 실험미술의 맥락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론 1963년 휴대용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해 최초의 비디오 작품을 제작 상영했던 백남준의 영향으로 출발했다. 조각이나 설치와 결합한 작품의 본격적인 출현은 1980년대 중반이고, 1990년대 이후는 서구로부터 유입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 맞물려 뉴미디어 혹은 미디어 기술에 의해 예술의 새로운 표현범주가 확장됐다. "외세를 받아들이고 동시에 이기기 위해서는 씹고 소화시켜야 한다"는 백남준 말의 실현이다. 비디오 매체를 조각형식에 접목한 대표적인 작가로는 박현기(1942~2000)가 있다. 1970년대 한국에 살던 박현기에겐 백남준의 첨단기술 영역은 '넘사벽'이었다. 결국 TV 영상을 하나의 오브제로 재해석한 '비물질적 구조'로써의 작품들을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1980~1990년대 조각과 설치에 영상을 접목한 비디오 설치 작업, 여러 TV 수상기를 오브제처럼 쌓거나 중첩하는 '비디오조각', 조각의 물리적 움직임과 영상을 결합한 '키네틱 비디오조각' 등 보다 다양해진다. 가령 외눈(目) 영상설치 작업으로 1992년 독일 카셀도큐멘타를 흔들어 놨던 육근병, 성적 정체성이나 여성주의 담론을 기반으로 '전자정원' 시리즈를 선보인 심영철 등을 꼽을 만하다. 현재는 '비디오조각'이라 부르기가 무색할 만큼 일상적인 표현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에 독일에 유학한 이용백의 '엔젤솔저(Angel Solider)' 시리즈는 미술적 담론과 대중적 흥미를 동시에 충족시킨 성공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더 나아가 2006년부터 동서양 명화를 이용한 미디어아트 작업을 선보인 이이남은 TV나 컴퓨터 본체에 의존했던 미디어아트를 기성 액자 형식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LED 기술을 아트 소재로 접목해 영상설치와 회화의 경계를 오묘하게 넘나든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이어 건축물 내부 공간 구조와 빛을 추적하는 영상물의 만남을 선보인 정정주의 작품 역시 비디오조각의 또 다른 변주로 해석될 만하다. 영상과 미니어처 공간설치가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안'과 '밖'의 공간적 질서를 시각적으로 경험시켜주고,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만들어내는 수단을 보여준다. 이처럼 한국의 비디오조각은 아날로그 시대의 영화로움과 디지털 시대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미술형식의 일상화를 견인해왔다. "미술에서는 다름이 중요하지 누가 더 나은가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것을 맛보는 것이 예술이지 일등을 매기는 것이 예술이 아니다."라는 백남준의 멋진 명언을 또 한 번 증명해보였다. 김윤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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