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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기계와 생물의 결합… 기술문명 속 인간구원을 향한 거대한 의지
  • 게시일 : 202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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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 리버풀비엔날레(2008) 출품작으로 최우람 작가를 국제적으로 각인시켰다. 알루미늄·스테인리스·플라스틱을 사용했고, 전기장치로 움직인다. 500×490×360㎝.



■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11) 기계생명체의 움직임과 서사… 최우람 작가

‘제트엔진 동작 + 상어 이빨’
기계와 동물 교배시키는 등
자연의 모방 넘은 인공생명
정교한 설계, 살아있는 듯해

서사 품은 ‘작은 방주’ ‘원탁’
무한경쟁 허무함 등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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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최우람이 아버지와 함께 그린 한 그림은 작가 최우람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해 흥미롭다. 무엇이든 먹고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생물과 유사한 소화 기관을 지닌 이 로봇들은 이후 최우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기계생명체(Anima Machine)의 전조이자, 유사시 가족과 친구들을 태우고 안전한 먼 곳으로 피신시켜주는 방주였다.

본디 기계를 좋아하던 소년이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기계라는 것을 주제로 삼아, 기계가 생명을 가지게 되는’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조소과 학부 시절 움직임을 주제로 한 수업 덕분이다. 작가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도심의 지하 공간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여 산업활동에서 남은 에너지를 기반으로 자라나는 작은 무기생명체를 상상했다. 게를 닮은 나노 머신인 ‘뫼비우스 신드롬(Mobius Syndrome)’(1998)이 움직이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는 관객의 모습은 자연물을 닮은 기계라는 이후 최우람의 행보를 암시한다. 금속성의 몸체를 한 명백히 무생물인 기계가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것은 생물을 닮은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생명의 상징인 빛 때문이다.

최우람의 유사 생물들은 형태나 기능에서 실제 유기체로부터 모티프를 얻으며 자연의 모방을 넘어 본격적인 인공생명으로 점차 진화한다. 제트엔진의 움직임과 상어의 이빨을 융합해 기계와 동물을 교배시키기도 하고(‘제트 하이아투스’(2004)), 따개비와 꽃을 합쳐 동물과 식물의 잡종(‘우나 루미노’(2008))을 만들기도 한다. 나아가 이 준(quasi)생명들은 성체와 유생, 암컷과 수컷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이루거나(‘어바누스’ 연작(2006)), 상호작용하며 군집생활을 영위하는 가상의 기계생명체 군락(‘우나 루미노’)을 재현하면서, 개별 존재에서 자체적인 자연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과학자 크리스토퍼 랭턴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 기계생명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을 넘어 ‘있을 법한 생명’으로 생명의 개념을 확장한다.
 

photo202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작은 방주’.



‘있을 법한 생명’의 구현은 여러 차원에서 설계된다. 기계와 생물의 결합은 동식물이라는 작품의 소재뿐 아니라 세부 구조나 동작의 설계, 경제성을 지향하는 작동 원리, 인공생명을 지향하는 의도에도 반영된다. 한 예로 최우람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각인시킨 리버풀비엔날레 출품작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2008)를 살펴보자. 거대한 애벌레 같기도 하고 절지동물 같기도 한 이 기계생명체는 29쌍의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며 리드미컬한 군무를 춘다. 갈비뼈가 들썩이는 듯도 하고 갑각류의 외피가 벌어지는 듯도 한 이 움직임은 200여 종의 부품이 5000개 이상 맞춤 제작되어 구현된다. 최우람의 기계생명체가 다른 키네틱 조각과 차별성을 지니는 것은 정교하고 부드러운 움직임과 구조 및 세부의 형식미다.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의 뼈대를 이루는 금속 구조물의 우미함은 아르누보를 연상시킨다. 나뭇잎의 잎맥이나 화염문 장식을 떠올리게 하는 얇은 금속판이 켜켜이 겹쳐있는 모양새를 보며 관객은 장식적 패턴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넝쿨 모양의 장식으로 유명한 아르누보는 자연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유기적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가공성이 좋은 금속으로 식물의 가냘픈 곡선을 추상화해 재료와 구조, 표현의 통합을 이루었다. 최우람의 작업 역시 수공예적 장식성과 금속의 기계미가 유기체와 병합되었다는 점에서 아르누보와 연결된다. 하지만 비단 형태적 유사성을 넘어 구조적이고 기능적인 지점에서 기계생명체는 아르누보의 정신과 접속한다. 흔히 장식미술로 오해하는 아르누보의 지향은 실상 형태의 기능적 일치로 기계미학의 속성을 지닌다. 기능을 위한 구조물이 장식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형식과 기능이 일치하는 합리성은 최우람 작업 전반에 적용되는 덕목으로, 구조물의 외양뿐 아니라 움직임에도 적용된다. 아름다움과 효율성의 결합은 동물의 생체 구성 원리로 기능주의 미학이다. 여기에 유사 과학적 학명과 생태보고서, 탄생 설화가 부가되면 기계생명체는 ‘있을 법한 생명체’에 더욱 가까워진다.

2010년대까지 최우람의 기계생명체는 다양하게 증식하며 성장한다. 물론 사이사이에 새로운 시도들도 있었다. 전선으로 만든 어둠의 천사 ‘허수아비’(2012)나 비닐봉지가 떠 있는 건축물 ‘파빌리온’(2012)처럼 인공생명체의 범주를 벗어나 기술문명이나 욕망의 허무함을 꼬집는 작업도 존재한다. 하지만 최우람의 변화를 공표한 것은 2022년 MMCA 현대차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은 방주’(2022)와 ‘원탁’(2022)이다. 외관상 두 작업은 모두 키네틱 조각의 범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생명체와 무관하다. 외형적으로도 우아하고 장식적인 금속 세공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폐종이 상자나 인공 짚 등 재료 또한 상이하다. 생명체의 비유가 사라진 대신 들어선 것은 서사다. 두 작품은 모두 기술 발전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과 현시점에서 인류가 겪는 혼란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반영한다. 무서운 속도로 전개되는 자동화와 끝을 모르고 치닫는 자본주의, 흑사병에 비유될 정도로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의 도래는 인류의 종말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낳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photo‘우나 루미노(Una Lumino)’. 금속, 모터, LED 등 사용. 520×430×430㎝, 2008.



방주는 다가오는 위험을 피해 우리를 피신시킬 구원의 공간이지만 다른 한편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기술문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앞뒤가 같은 배의 구조,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명의 선장, 재활용 종이상자로 만들어진 재료의 허술함은 방향 상실의 현재와 끝없는 욕망의 허망함을 가리킨다. ‘원탁’ 역시 무한 경쟁의 허무함을 형상화한다. 지상에서는 머리 없는 인간들이 머리를 차지하려 치열하게 원판을 기울인다. 시시포스처럼 원탁을 들어 올리는 노동을 무한히 수행하는 허수아비들은 체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동시대인의 초상이다. 이들의 몸짓은 체제를 강화하는 내부 공모인가, 체제의 억압에 대한 희생인가? 과거 유사 생명체의 창안에 주력하던 시선은 이제 특정 개체를 벗어나 기술문명 전체의 향방에 대한 철학적 숙고로 확장된다.

변화의 내부에는 연속성도 내재한다. 두 작품은 미학과 공학이 만나는 기계미학을 강화된 형태로 계승한다. 예를 들어, ‘작은 방주’에서 70개의 노가 20여 분에 걸쳐 자아내는 장대한 안무는 거대한 검독수리가 날개를 펴는 듯한 압도적인 장엄함을 보여준다. 하나의 모터로 움직임을 통제하던 구작과 달리, ‘작은 방주’의 경우 가동 범위가 다른 모터를 하나의 유닛(기계 팔)마다 두 개 달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또한 양쪽의 유닛이 부딪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시뮬레이터를 통해 모델을 설계하고 시험 가동을 통해 오차를 줄여가는 방식이 채택되었는데, 이는 과거 하드웨어 중심의 기계공학적 접근에서 소프트웨어를 통한 제어계측의 비중이 증가했음을 가리킨다. 공학적 개선은 미학적 도약으로 이어진다. 물질문명의 질주와 막다른 길에 봉착한 인류, 그럼에도 끝내 스스로를 구원하는 인간의 의지라는 거대한 드라마는 섬세하고 다양한 움직임, 비대칭의 수용, 정지의 도입 같은 새로운 움직임의 방식으로 실현된다.

도피 로봇을 만들던 순수한 선의는 다시 한 번 회귀한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방향 상실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파멸을 자초했지만 해답도 스스로 구할 것이라고 인간을 한 번 더 믿어보는 것, 이것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가 된 인간과 기계가 가야 할 길이고, 최우람이 생각하는 구원의 의미일 것이다.

문혜진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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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람 작가는

1970년 서울 출생으로, 중앙대 미술대학 조소과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움직임을 담고 있는 시각예술의 의미와 가능성을 탐구해왔으며, 기계에 대한 특유의 관심을 결합시켜 키네틱 조각을 실험하고 있다. 최우람의 키네틱 조각은 독보적 기술력과 완성도로 인해 주목을 받았고,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전에 초대되며 한국 대표 작가로 발돋움했다. 2006년 도쿄 모리미술관 개인전과 상하이비엔날레 참여를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8년 대표작 ‘우나 루미노’와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를 각각 도쿄 스카이 더 배스 하우스의 개인전과 리버풀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2011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작가로 선정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 작가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미국 뉴어크미술관, 폴란드 아트 스테이션 파운데이션, 홍콩 유즈 파운데이션 등 국내외 주요 미술기관에 소장돼 있다. 김세중 조각상,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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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4111801032212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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