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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어처 건물안팎, 감시카메라로 포착… ‘빛 조각’에 담은 환영의 세계
  • 게시일 : 202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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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Ⅲ

(1) 분절된 풍경과 현대인의 불안한 초상 - 정정주 작가

 

獨작은방서 햇빛 응시한 경험

도시로 확장하고 공동체 성찰

 

건축 모형·투사 영상 통해서

비현실-현실 경계 오가게 해

‘기계 눈’ 빌려 인간존재 탐구

 

스테인리스에 LED 장착작품

도시 사는 사람들의 불안 담아

정정주 작가의 ‘빌딩’(2006)은 건물 모형 내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안팎의 이미지를 전시장 벽면에 투사해, 공동체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성찰한다. 목재와 아크릴로 제작한 건물 모형, 비디오 카메라 4대, 형광등, 비디오 프로젝터, 모터 등으로 구성됐다.   작가 제공

정정주 작가의 ‘빌딩’(2006)은 건물 모형 내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통해 포착된 안팎의 이미지를 전시장 벽면에 투사해, 공동체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성찰한다. 목재와 아크릴로 제작한 건물 모형, 비디오 카메라 4대, 형광등, 비디오 프로젝터, 모터 등으로 구성됐다. 작가 제공

‘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세 번째 시즌을 시작합니다. 한국 조각 예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공공의 애정과 관심을 촉구하는 연재입니다. 2023년 첫 시즌은 ‘K-조각’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규명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24년 두 번째 시즌은 세계로 뻗는 중견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적극적으로 발굴했다는 공감도 얻었습니다. 이번에도 ‘K-스컬프처 조직위원회’를 설립해 조각가들을 후원해 온 크라운해태제과와 공동기획했습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더욱 흥미로운 분석과 전망에 많은 기대와 성원 바랍니다.

정정주는 조각가, 미디어 아티스트, 멀티미디어 작가, 설치미술가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작품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여 왔다. 그의 조각은 비평가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가 해설한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처럼, 전통 조각의 매체적 한계를 넘어 건축·과학·움직임·영상·빛의 장치로 확장되는 것이자 몸의 감각이 체류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의 작품은 형식적인 차원에서, 건축적 구조물과 미디어 영상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조형 세계를 선보여 왔다. 내용상으로는 ‘빛’을 매개로 사회·역사적 맥락과 함께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을 두루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건축적 구조물이란 작은 입방체에서 집, 도시로 확장하는 것이자, 사회적 공동체의 의미를 품은 것이기도 했다. 또한 그의 미디어 영상은 ‘빛의 회화’를 공간 위에 환영으로 드리운 것이거나 미니어처 세상을 감시카메라와 같은 ‘기계의 눈’을 통해 바라본 재현의 풍경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빛’을 개념적으로 탐구하는 ‘추상적 환영’뿐만 아니라 감시카메라가 건축 모형의 내외부를 포착하여 실시간 영상으로 전시장 벽면에 투사하는 ‘구상적 재현’을 거쳐 우리에게 놀랄만한 환영의 세계를 선보인다. 실제 공간(건축 모형)과 재현 공간(투사 영상)이 서로를 침범하며 생기는 지각의 어긋남이 만든 숭고의 세계는 또 어떠한가? 그는 카메라로 포착하고 투사한 관객의 모습을 통해서 ‘보는 자’를 ‘보이는 자’로 전도하는 마술적인 ‘응시의 장치’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이러한 조형 장치는 관객에게 비현실/현실, 추상/구상, 공간/주체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현실 풍경과 인간 주체의 문제를 끊임없이 성찰하도록 이끈다.

정정주의 초기 작업은 1990년대 말 독일 유학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큰 창을 통해 방으로 들어온 햇빛이 주는 편안함과 불편함의 이중적 느낌에 영감을 받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말, 빛을 표현한 벽면 회화, 거울 효과를 탐구한 설치, 환등기로 구조물 내외부의 빛의 변화를 탐구한 조각, 감시카메라를 통해 빛의 이동을 포착하는 키네틱아트 등 다양한 조형 실험이 그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2000년 건축 모형 내부에서 움직이는 감시카메라로 내부 풍경을 포착한 ‘보는 집(Schauhaus)’ 연작으로 이어진다. 향후 이 연작은 2004∼2006년 중국 상하이 푸동의 주거, 쇼핑, 문화 복합 단지인 ‘젠다이플라자’를 빌딩 미니어처로 재현하고 도시의 스펙터클을 탐구하는 ‘젠다이플라자’나 ‘빌딩’ 연작을 거친 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거주지 중심의 도시 빌딩을 개인적인 응시의 관점으로 탐구해 온 ‘응시의 도시’ 연작으로 변주, 확장되었다. 따라서 후자의 연작은 독일의 한 작은 방에서 빛을 응시했던 경험을 ‘박스-작은 집-마을-도시’로 확장하고, 하나의 장 안에서 도시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과 함께 개인 기억을 집단 기억의 문제로 확장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해설할 수 있겠다.

여기서 건축적 구조물 내부의 감시카메라는 그 속에 들어갈 수 없는 관객의 눈을 대신하는 지각 장치가 된다. 예를 들어, ‘응시의 도시-나고야’(2007)는 일본식 가옥 모형의 내부 풍경뿐만 아니라 그곳을 보고자 작품 외부에서 서성이는 관객의 모습을 카메라가 포착, 투사한다. 라캉이 ‘응시(regard)’를 주체가 ‘타자의 장’에서 되돌아와 주체를 붙잡는 사건으로 보았듯이, 이 작품은 관객이 응시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경험을 통해 타자의 욕망과 더불어 ‘주체-타자가 함께 만든 하나의 공동체’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한 여성이 머리카락으로 끊임없이 얼굴을 감추는 퍼포먼스를 담은 ‘로비’(2010). 70×60×40㎝의 크기로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LCD 모니터, LED 조명 등이 사용됐다.  작가 제공

한 여성이 머리카락으로 끊임없이 얼굴을 감추는 퍼포먼스를 담은 ‘로비’(2010). 70×60×40㎝의 크기로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LCD 모니터, LED 조명 등이 사용됐다. 작가 제공

작품 ‘로비’(2010)를 보자. 이 작품은 투명 아크릴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공동체의 로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한 여성이 연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감추는 퍼포먼스 영상을 모니터로 선보인다. 개방 공간 속에서 벌이는 은폐의 퍼포먼스는 스트레스로 가득한 현대인(개인/집단)의 숨을 곳 없는 불안심리와 그 치유의 욕망을 드러낸다.

한편, ‘응시의 도시’ 연작은 훗날 구체적 공간의 이름을 달고 작가의 고향이었던 광주에서의 민주화 항쟁의 역사를 추적하는 작품들로 이어지게 된다. ‘전일빌딩’(2018), ‘구(舊) 국군광주병원’(2019), ‘구 전남도청’(2019), ‘상무관’(2020)과 같은 작업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장소라는 점에서, 상처 입은 집단 기억과 개인 기억을 오가게 만든다.

감시카메라가 미니어처 안팎을 촬영하고, 다수의 프로젝터로 투사하거나 멀티플 모니터에 전송하는 이 작품들은 안/밖, 과거/현재, 주체/타자, 집단/개인, 피해자/가해자가 얽힌 트라우마가 환영처럼 일렁이는 공간을 만든다. 공간(장소의 결핍)과 이미지(투사의 과잉)가 충돌하여 만든 ‘감각적 사실’을 통해서 말이다. 특히 커다란 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인 국군광주병원의 건물 모형과 함께 감시카메라와 프로젝터로 전시장 주변에 유령처럼 흩뿌려낸 병원의 모습은 이러한 감각적 사실을 통한 환영의 공간을 극대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작업에 나타난 멀티플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대개 격자 모양을 띠고 있는 이러한 멀티플 구조는 ‘빛 조각’의 다채로운 변화뿐만 아니라 도시의 다양한 면모를 규칙적 화면 속에 담아내기에 효과적이다. 이러한 멀티플 양상은 비교적 최근작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27개의 방’(2017)과 ‘27개의 방-C2301’(2023)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금속 칸막이가 있는 27개의 박스 안에 파주, 고양 등 각 도시의 풍경 영상을 줌인, 줌아웃을 반복 재생하는 작품으로, 금속 칸막이에 희뿌옇게 반사된 풍경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의 양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후자는 전체 영상을 LED 조명의 기본색인 빨강·초록·파랑(RGB)의 단색으로 순차적으로 변화하게 했는데, 무광으로 마감된 칸막이에 반사된 재현 영상이 마치 모니터 광원처럼 추상적 화면으로 신비롭게 드러난다.

‘휘어진 빛21-01’(2021). 180×320×250㎝. 스테인리스 스틸과 LED 조명 사용.  작가 제공

‘휘어진 빛21-01’(2021). 180×320×250㎝. 스테인리스 스틸과 LED 조명 사용. 작가 제공

한편, 거울, 색, 벽 등 다양한 기하학적 요소와 더불어 수평과 수직 그리고 스테인리스 스틸의 ‘환조적 조각’과 ‘부조적 평면’으로 구성을 다각화한 ‘파사드’ ‘노이즈’ 연작이나, 구조를 오히려 단순화한 미니멀아트 유형의 최근작 ‘빛나는 도시23’ 그리고 ‘휘어진 빛21-01’에서도 이러한 멀티플 구조와 이미지는 잘 드러난다. 특히 스테인리스 스틸에 LED 조명을 장착한 작품들은 화려한 문명 도시에 거주하는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적 초상이 잘 담겨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빛’은 더 이상 세계를 ‘비추는’ 주체가 아니라, 세계가 이미 ‘발광하는 방식’ 그 자체가 된다.

이처럼, 조각가 정정주는 분절된 풍경과 현대인의 불안한 초상을 담은 자신만의 ‘빛 조각’을 통해 문명 도시의 화려한 스펙터클 뒤에 가려진 기억 도시의 환영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중이다.

김성호 미술평론가·2026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감독

■ 정정주 작가는

1970년 광주에서 출생했다. 1995년 홍익대 미술대 조소과와 2002년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후버트 키콜 교수의 마이스터슐러)를 졸업하고, 2015년 국민대 대학원에서 미술학 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성신여대 조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 작가는 도시와 건축공간의 감각적 경험이 자신의 개인적 기억과 사회적 기억을 어떻게 매개하는지 분석하고, 이를 조각, 영상, 설치 기법을 통해 작품화한다. 구체적으로는 건물 형태를 모형으로 구축하고 빛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선의 권력을 전복하여 심리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조형 설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02년부터 서울, 일본, 중국, 벨기에 등에서 1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미래는 지금이다’(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서모클라인 오브 아트(Thermocline of Art)’(독일 ZKM) 등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금천예술공장, 고양미술창작스튜디오, 쌈지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으며 2021년 CJ문화재단 지원 작가로 선정됐고, 2010년 김종영 미술상, 2003년 광주신세계미술상을 수상했다.

[기사보기]

https://www.munhwa.com/article/11563608?ref=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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